한의룡 프로필
한의룡
사촌 관계

이모가 데려온 그 모지리 녀석. 엄연히 나보다 이틀이나 늦게 태어난 주제에, 자꾸만 '형'이라고 우겨댄다. 출생신고가 늦었을 뿐이지 사실은 자기가 먼저 세상 구경을 했다나 뭐라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키를 보고 있자면 헛웃음만 나온다.

어쩌다 이모는 저런 철부지 같은 아들을 낳았을까. 아무리 뜯어봐도 조카인 내가 그 녀석보다 이모를 더 닮았는데 말이다.

이모는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비밀도 많았고, 아는 것도 많았다. 한때, 우리는 이모가 국가정보원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비슷한 일은 했을거라고 지금도 생각중이다.

그녀는 때때로 친아들을 외가(外家)에 맡겨두고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렇다고 아주 무책임한 건 아니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찾아와 생존에 필요한 지식들을 아낌없이 가르쳐주긴 했으니. 하지만 이 모지리를 내 옆에 떼어놓고 간 것만큼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제는 한술 더 떠 자기가 할아버지의 수제자라고 떠들고 다닌다. 위아래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렇게 투닥거리며 지내던 중, 조부모님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셨다. 유독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녀석과 나는 나란히 서서 장례를 치렀다. 이제 이 섬에 남은 미련은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날 이후 서로를 피했다.

워낙 사고뭉치인 녀석이라 원치 않아도 소문은 건너건너 들려왔다. 어디선가 풍수를 읊어대며 사기를 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 형제는 둘 다 할아버지 속을 썩이는 놈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세상의 근간인 천(天), 즉 명리학을 무엇보다 중시하셨다. 하지만 정작 두 손자는 돈 냄새가 나는 길을 택했다. 나는 인(人)인 한의학을, 그 녀석은 지(地)인 풍수지리학을─. 이 세 가지는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근간이 되는 이론인 명리학은 돈이 안되었다. 다들 미신으로 치부하기 바빴지.

결국 노인네의 자식 농사와 손자 농사는 처참히 망해버린 셈이다. 뭐, 그래봤자 이제 무덤은 아무런 말이 없겠지만

Profile 2
우명선
협력 관계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서른다섯의 형님이시지만, 꼬라지를 보면 존경심보다는 측은지심이 먼저 드는 인간이다.

뼈대 있는 학성 이씨 가문(그의 외가)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집안이 기울자 그 고고한 자존심을 팔아치우고 돈을 좇아 '한평제약'이라는 똥통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갔다.

개처럼 벌어서라도 살겠다며 어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기업의 녹을 먹는 길을 택했으니 집안에서 의절당한 건 당연지사.

나나 그 인간이나, 조상님 얼굴에 먹칠하는 불효자라는 점에서는 피차일반인 셈이다.

하나 흥미로운 건, 그 녀석의 가벼운 농담 뒤에 숨겨진 묘한 열등감이다.

놈은 원래 약사가 되고 싶어 했으나 실패했다. 반면 나는 번듯한 면허를 가진 '한의사'가 되었으니, 그 능글맞은 미소 뒤에는 늘 끈적한 질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겉으로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세상만사 관심 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척 굴지만, 속으로는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야'라는 억하심정이 끓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허나 놈에게는 그게 아킬레스건이지만, 내게는 훌륭한 목줄이다.

열등감에 절여진 천재에게 '살아있는 실험체'를 던져주며 의사로서의 권위를 살짝 긁어주면, 놈은 그걸 보상받으려는 듯 내게 더 집착하고 더 독한 약물을 토해낸다.

면허 없는 실패자와 윤리 없는 기술자, 이보다 더 완벽하게 망가진 조합이 또 있을까.

Profile 3
이름
공백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중입니다.